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찰 용음 (문단 편집) == 성격 == 현숙하고, 온화하고, 단정한 황후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보친왕부에 갓 시집을 왔을 때까지만 해도 [[위영락]]과 비슷한 자유로운 성격이었다.[* 이 때문에 [[휘발나랍 숙신|계황후]]가 화친왕 홍주와 결탁하여 반역을 했을 때, [[건륭제(연희공략)|황제]]에게 '''"선황후는 (당신이 아닌) 오직 자유만을 사랑했어요!"''' 라고 용음을 비난해버렸다.] 그러나 28화에서 용음이 밝히길 보친왕과 결혼하고 나서 [[옹정제]]의 황후인 효경헌황후에게 인사를 올리러 갔을 때, 남편인 건륭보다 더 말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호되게 혼나고, [[당태종]]의 정실이었던 [[문덕황후 장손씨]]가 쓴 '여칙'을 1백번 필사하라는 벌을 받았다. 결국 이것 때문에 용음은 강제로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었고 남들이 바라던 이상적인 황후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고, 이 때문에 황후는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위영락을 보호해주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건륭제(연희공략)|황제]]''': 효경헌황후는 자애로운 분인데 황후를 벌하였다고? '''부찰 용음''': 신첩이 폐하보다 더 많이 말했으니까요. '''황제''': 더 많이 말했다고 해서? '''부찰 용음''': 네. "한 사람의 아내라면 말을 삼가고, 신중해야 한다. 남편이 한 마디를 했는데 넌 두 마디를 했으니 잘못이다." '''황제''': 짐은 이해가 되지 않는군... '''부찰 용음''': 신첩은 기억합니다. 효경헌황후의 시호 조서에는 그분을 가리켜 자애롭고 온유하며 규방의 도를 잘 따라서 뭇 여인들의 본보기가 됐다고 했죠. 그렇게 법도를 잘 지키고, 여자의 도리를 준수하는 황후께서 용납할 수 없었죠. 보친왕의 부인이 보친왕 본인보다 언변이 뛰어나고 자유분방하다는 것을요. '''황제''': 황당하군... '''부찰 용음''': 사내에게는 황당할지 모르겠지만 여인에게는 그게 덕행이라는 거예요. 매사에 남편을 하늘로 여기며 남편을 섬겨야 하죠. 남편의 뜻이 곧 자신의 뜻이고요. 천하의 여성이 모두 그러할진대... '''더구나 신첩은 일국의 국모입니다. 한 치도 어긋날 수 없죠. 그랬다간 온 자금성이, 아니... [[청나라]] 전체가 효경헌황후처럼 신첩을 질타할 테니까요. 책임과 본분을 다하지 않았다고요.''' '''황제''': '''황후... 짐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소. 그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황후요.''' '''부찰 용음''': (눈물을 흘리며) '''하지만 폐하... 신첩 스스로는 가장 훌륭한 자신이 아니에요. 폐하와 혼인한 이후부터 더는 부찰 용음이 아니게 됐죠.''' 저라는 사람은 꽁꽁 싸서 감추고, 모든 걸음걸음에 가혹할 정도로 완벽을 기했어요. 저는 너그럽고, 단정하고, 현숙해야만 했죠. 그게 모두가 원하는 황후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자금성 전체가 법도에 매달립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죠. 하지만 [[위영락|영락]]은 달라요. '''황제''': 법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날뛰니까... '''부찰 용음''': 하지만 그 아이는 자기 자신답게 살죠. 위영락은 그냥 위영락이에요. 활달하고,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맞서 싸워요. 다른 사람들처럼 남에게 휘둘리는 꼭두각시가 아니에요! 폐하, 신첩은 과거의 저를 지켜내지 못해서 지금의 제가 됐어요. '''신첩은 과거의 저를 지키듯 위영락 그 아이를 지켜낼 겁니다.''' 폐하... 아시겠습니까? '''황제''': 그러니까 짐이라 할지라도 절대 그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다 이 말이군? '''부찰 용음''': ([[희탑랍 이청|이청]]과 함께 무릎 꿇으며) 네, 절대로요. 신첩이 처음으로 폐하를 거역하는 겁니다. (건륭제에게 절을 하며) 폐하께 간청드립니다. 이번엔 신첩의 뜻대로 하게 해주세요... || 다만 작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임에도 매우 선량한 성격이기에 다들 은근히 용음을 호구 취급한다. 사사건건 용음에게 시비를 거는 고귀비야 말할 것도 없고, 측근 시녀인 희탑랍 이청도 용음을 자신을 좋은 곳에 시집 보내줄 도구로 여겼다. 게다가 틈만 나면 아랫 사람들이 황후의 치맛자락를 붙잡고 늘어지는 판국에 정작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고, 그렇게나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어줬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영락이 용음의 곁을 지키고 있었을 때는 누군가가 용음을 해치려 해도 영락의 지략으로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었지만, 영락이 없을 때에는 용음을 각종 모략에서 지켜줄 이가 없었다. 영락이 신자고에 가있는 동안 아이를 유산하고 혼수 상태에 빠졌으며, 영락이 섣달 그믐 출궁했던 틈을 타 평소 용음을 미워하던 이들에 의해 장춘궁에 불이 나 영종이 죽었고, 결국 이에 절망한 용음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것과 별개로 분노할 때는 화낼 줄 안다. 4화에서 [[부찰 부항|동생]]이 2황자 영련과의 추억이 담긴 장명쇄를 빼앗아 던지자 부항에게 화를 내면서 궁녀들에게 어서 장명쇄를 찾으라고 신경질을 부린 적이 있었고, 54화에서 [[희탑랍 이청|올케]]가 [[건륭제(연희공략)|남편]]과 사통하여 아이까지 가지자 [[싸대기]]를 갈기면서 다시는 황궁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격노를 터트린 적도 있었다. 용음은 사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근검절약을 하는데 이 때문에 용음이 살아있었을 때 자금성의 후궁들은 본의 아니게 그녀를 따라 절약해야만 했다. 그러나 용음이 먼저 솔선수범을 했기 때문에 [[고녕형|고귀비]]를 제외하면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용음의 뒤를 이어 황후가 된 [[휘발나랍 숙신|숙신]]은 근검절약과 더불어 궁 내에서 키우는 농작물을 외부로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쓸데없는 관행을 줄여 허투로 나가는 돈을 줄였기에, 그녀가 죽은 후에도 사치를 부리는 후궁은 거의 있을 수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